소설이란 ‘소‘자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쓰는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쓰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는 약간의 각색이 있습니다. 허구라고 하기에는 사실이 너무 진하게 묻어 있지요. 그래서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합니다만 억지로 소설에 넣고 싶습니다. 이야기가 백프로 사실은 아니니까, 약간의 허구가 들어가 있으니까 소설이라 이야기 할 수가 있겠습니다.
어릴 때 우두커니 쳐다본 하얀 상현달을 보면서 “왜 저기에 토끼 두 마리가 ‘쿵더쿵 쿵더쿵’ 방아 찧는 토끼 두 마리가 안 보이지? 잠시 밥 먹으러 들어갔나? 조금 있으면 나오겠지.”라고 상상하던 반달이 있었는데, 우리가 쳐다 본 그 반달이 감옥에서 본 반달, 군 영창에서 쳐다보았을 때 반달이 어릴 때 호기심으로 쳐다 본 반달이랑 어떻게 느낌이 똑 같음을 느끼고, 이 소설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은 그 느낌이 똑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 반달 >
제1부
박정희의 유신에 항거한 많은 동지들이 있었다. 전국에 산재하였다. 너무나 암울하였다. 도저히 ‘민주‘란 이야기를 꺼집어내기가 겁이 났다. 결국은 우리나라는 미개한 아프리카의 우간다보다도 못한 정치 미개국으로 전락하고 마는가? 도저히 방법이 없는가? 많은 선각자들이 자기의 안위와 목숨까지도 저버리고 바쳤던 민주화 열망이었지만 군부의 힘은 너무 막강하였다.
미국도 우리들 편을 들어 주지 못하는가 보다. 하기사 우리나라 내정 일을 미국에 ‘콩나라 팥나라’ 부탁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들의 숨통을 터 줄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
“누구한테 부탁하지? 미국과 잘 통하고 입김이 통하는 사람이 누구지?”
‘아하 김대중 선생이 그래도 미국에 건너가서 많은 미국 사람과 사귀어 놓았다지. 그래, 김대중 선생만 귀국하고 많은 미국의 민주화를 열망하는 친한 인사 들만 많이 데리고 와서 포진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미국의 대통령에게도 압력을 행사하라 부탁하고 정치,경제,군사 여러 쪽으로 압력을 행사하면 지금 박정희 정권도 어느 정도 들어 주겠지. 그 길 밖에 없구나. 우리 민주 국가를 열망하는 우리들의 힘만으로 너무 약해.’
그렇게 푸념만 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선 우리 학생들이 분연히 일어 나야 돼...
“이 번에 배희진이가 대구 남부 경찰서에 끌려 갔다메? 하숙집 방에서 김일성 주체사상 책이 나왔다메? 되기 오래 살겠네? 한 2년 썩고 나오겠구먼. 새끼들 또 짬봉 국물 코로 한 주전자 다 집어 넣은 것 아이가? 전에 씹겁했는데. 그 친구 또 되기 욕 묵겠네? 안됐다.”
끼리끼리 잡혀간 동지들 안부를 묻고 있다. 난 아직 신입생이라서 선배들 이야기만 옆에서 눈동냥하고 있다.
“학교 가거든 이 찌라시 돌리라이, 글고 전 번 맨치로 또 붙잡히지 말고 잽싸게 내 빼. 바보 같이 덜렁 잡혀서 맞지 말고 알았제?“
“예 알았심더. 조심하께예.”
그렇다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는 우리들은 거의 독립군 마냥 임무에 충실하였다. 선배들이 우리들에게 해 준 것도 아무 것도 없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선배의 명령에 하등의 이의를 달지 않고 열심히 그리고 충실히 임무에 목숨을 걸었다.
78년도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진 경재에겐 너무 혹독한 시련이었다. 인쇄소를 하시던 아버지께서 불황 중인데다 당좌수표 할인을 하던 어머니가 막대한 금액의 당좌수표를 부도 맞는 바람에 아버지께서 거래처 및 각종 친인척의 부채를 고스란히 앉고 말았다. 그래서 2년도 못 버티고 망하고 말았다. 수 많은 빚쟁이가 집에 진 쳐 있고 고등학교에서 돌아 온 경재는 삼촌을 대신해서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근 2년을 공부도 하지 못하고 망가진 집안 꼴에 모든 것을 자포자기 하였다. 그렇다고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지만 억지로 사립 대학에 진학한 경재 자신도 대학 등록금 등 경제적인 문제로 어쩔줄을 몰랐다.
그런 와중에 경제는 현실의 문제에 자꾸만 부딪히고 있었다. 동생이 공장에서 근무하다가 손가락이 세 개나 짤렸는데 졸다가 짤렸다고 단 한 푼의 위로금도 받지 못하고 산재도 들지 않은 영세업자라 사장에게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집에 놀고 있는 동생을 보노라면 울화통이 치밀어 하루에도 몇 번이고 옥상에서 뛰어 내릴 뻔 했다. 현실은 경재 식구에게는 너무 가혹하였다.
학교에 가서는 당연히 유신반대 데모에 참여하였다. 학교 교문에 올라가면 친구들이 날 반갑게 맞이 하였다. ‘찌이네’ 골방에 당연히 모였다. 어제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열거 하였다. 그 날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나갔다가는 전경에게 잡힐 수 밖에 없다. 어제 경수랑 수환이가 잡혀 갔다. 직사게 두들겨 맞았을게다. 그렇게 무턱대고 나갔다가는 잡혀갈게 뻔하니까 오늘은 작전을 달리하자는 이야기다. 게릴라 식으로 하쟌다. 하지만 전경 게들도 머리를 써서 사복 전경이랑 골목 구석 구석에 포진해 있어서 그것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시민들과 같이 섞여서 투쟁해야 되는데 시민들이 한 명도 호응을 하진 않아서 어제처럼 했다가는 몽땅 잡혀 갈 것이 뻔하다. 어떡하든 우리 대열이 흩어져서는 안된다. 지금 현재 총 모아도 200명 모으기가 힘들다. 게릴라 식으로 전단지 뿌리고 흩어져서 구호 외치고 전경이 떴다 싶으면 재빨리 골목으로 식당으로 술집으로 숨는 전략을 짜기로 했다.
될 수 있는데로 전력이 약해져서는 안된다. 더 많은 동지들을 규합하고 잡혀 가는 인원이 최소한이 되고 도심지에서 최대한 긴 시간 동안 구호를 외치고 사라지는 전략을 짜기로 했다.
우리들의 이러한 전략은 지금 전국적으로 펼치고 있는 듯하다. 들은 이야기로 아마 지금 전국적인 현상인가 보다. 작년 78년도 데모보다 올 핸 더 심하다고 술렁거리고 있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밀고 가면 박정희도 손을 안 들 수가 없을거야 계속 밀어 부쳐야 한다.
여기서 지쳐서는 안된다. 잡혀 갔다가 풀려온 친구 이야기로 지금 경찰서에서 잡혀간 학생이 너무 많아서 경찰 업무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아우성이란다. 누군 경찰서에서 군부대 영창으로 잡혀 갔다가 군부대 영창에 있다가 풀려난 친구도 있단다. 방위들한테 안 죽을 정도로 많이 맞았다고 이야기 했다.
대구에도 이렇게 밤낮으로 데모하였지만 김영삼의 출신 고향이 부산은 한 몫 더 했다. 게다가 공장 근로자가 많은 마산,창원 지역은 하나의 민중항쟁의 성지가 될 만큼 분위기가 무르 익었다.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애타게 외쳐 보던 민주화가 이 번 기회에 꼭 이루어 보고 싶은 열망은 사람들 하나 둘 마음에 새겨져 있었다. 나 하나의 참여가 나 하나의 데모꾼의 동참이 혹시 나라를 뒤바꿀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서로의 마음과 마음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위 현장에는 시민들의 동참은 거의 없었다.
“데모는 당연히 먹고 사는데 지장이 별로 없는 학생들이나 하는 것이제? 우리 시민들은 아~들 먹여 살려야 되고 우리들 경찰서 붙들려 가면 여러 식구 굶어 죽으니까 데모는 하고 싶은데 못하는 이 마음을 알라조요 알았죠?”
“데모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지. 먹고 사는데 별로 지장이 없고 즉 내 몸 하나 어떻게 잘못 되어도 딸린 식솔이 없는 그리고 생각하는 것이 단순한 즉 세파에 찌들이지 않은 우리 학생들이나 하는 것이지? 안 그렇나, 그자?“
그래서 많은 시민들의 눈동자에는 이 나라가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고, 군인들이 정치를 한답시고, 많은 억울한 사람들 가두고 족쳐서 너무 자유가 없는 나라를 만든 것은 사실이라고,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귀동냥으로 입으로 전달,전달 되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선뜻 데모 대열에 뛰어들기는 힘들었다.
당시 대학생들의 부산, 마산에서 일어난 데모 대열의 열기는 대단하였다 지칠지를 몰랐다. 밤낮으로 일어난 시위로 전투경찰의 병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장시간 데모대열의 집합으로 전투경찰의 피로도와 사기는 완전히 떨어져 있었다. 고위 당청회의에서 제기된 군인동원령이 이심전심으로 받아 들여 졌다.
과열된 데모로 전투경찰은 최루탄과 곤봉과 방패로 시위대를 무차별로 공격하였다. 쫓겨가는 학생을 끝까지 따라가서 길바닥에 때려눕히고는 개패 듯이 마구 때렸다. 수 많은 시민들이 그 모습을 보았지만 누구 하나 달려들어 도와주지를 못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시민들의 눈에도 같이 눈물이 흘렀고, 누구하나 도와주자는 이야기도 없었지만 조금씩, 조금씩 동조하는 시민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한 학생이 대로를 쫓아서 전경들에게 열심히 쫓기고 있었다. 학생들은 죽어라 달리고 있어고 그 뒤에는 곤봉을 든 전투경찰들이 대거 쫓아가고 있었다. 상가의 시민들의 손에는 화분이 들려 있었다. 누가 그러라고 시키지도 않았지만 그 시민은 학생들을 쫓아가고 있는 전투경찰을 향하여 화분을 내던졌다.
그렇게 해서 하나 둘 시민들도 같이 시위 대열에 합류를 하였다. 이제는 전투경찰 병력으로 시위를 막기는 힘들게 되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