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선거에서 항상 반한나라당의 선두주자에게 투표를 했던 유권자이다. 그만큼 한나라당에 대한 뿌리깊은 배제심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부류이다. 그러한 성향이 자랑이라거나 반드시 옳다거나 그런 주장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 스스로 가진 참정권을 내가 설정해둔 판단의 기준으로 행사한 것 뿐이니 욕먹을 일도 아니고 칭찬을 들을 일도 아니다.
그런데 어제 대통합 민주신당의 예비경선 토론회를 보면서 실소를 금할 길이 없었다. 일부 대선주자들의 손학규후보에 대한 정체성 논란이 그것이다. 심지어 함께 토론을 하는 것만으로도 자괴감을 느낀다는 후보도 있었다.
한나라당에 대하여 호의적인 감정을 가질 수 없는 입장에서 손학규씨가 반한나라당 진영의 대표주자로 인식되는 현실이 매우 슬프다. 심지어 모욕감마저 느껴진다. 얼마나 정치인들이 한심하면 상대편 후보선수를 데려다가 붙박이 주전선수로 쓰겠는가? 인정하고 싶지않다. 왜 그가 우리진영에 있는지를 되묻고 싶어진다.
한나라당에서 지난 10년의 민주정부에 대하여 비난하고 조소하던 그가 왜 이쪽으로 귀순한 것일까? 한나라당의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고 들어간 것인가? 들어가서 지금까지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인가? 혹시 자신을 1등시켜주지 않으니 소속당에 침밷고 나온 것은 아닐까? 그를 추종하는 정치인들이 매우 역겹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그를 인정하기 싫다. 솔직히 말하면 관심조차 갖고싶지 않다. 그러나 그는 이미 상대진영에 와서 선두주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상대팀에 비하여 약팀이어서 그런 것이다. 분명히 약팀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쪽 진영을 이렇게 처참한 약팀으로 만들고, 궁색하게 만든 것은 누구일까? 바로 열린우리당을 이끌던 지도부일 것이다. 돈내고 시간쪼개서 열린우리당을 돕던 당원들은 책임질 일이 별로 없다. 그들이 원칙을 어긴 일도 없다. 그들이 대가를 바라고 더러운 짓을 한 일도 없다. 열린우리당을 만들고, 틀을 흔들어 망가뜨리고, 다시는 재생할 수 없도록 짖밟은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은 당의 요직과 정부의 요직을 거쳤으면서 자신들의 당에 침을 밷고 떠난 자들이다.
어이없는 정치인들의 행보를 돌아보자. 지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얻어 의회권력까지 차지하였다. 추후에 지방권력만 차지하면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독차지할 기세였다.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다. 그들이 맘만 먹으면 대한민국은 빠른 속도로 개혁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지역구도도 허물어지고, 깨끗한 정치와 국민이 참여하는 상향식 정치도 가능할 터였다.
그런데 그러한 기대는 곧 바로 물거품이 되었다. 총선후 첫 당선자 워크샵에서 정동영 당의장은 선거때의 약속을 허망하게 허물었다. 상생의 정치를 주장하고, 개혁이 아닌 실용을 꺼내 들었다. 일종의 유권자 배신이다. 곧 이어 천정배 원내대표는 한나라당과 원구성 협상을 지휘하였다. 이종걸 원내부대표는 한나라당 남경필 원내부대표와의 협상에 나섰다. 개혁입법을 기대하던 국민들은 또 다시 좌절을 맛보고 말았다. 모든 입법의 관문인 법사위원장을 제2당인 한나라당에게 넘겨준 것이다.
비판이 일자 그들은 궁색하게 변명을 한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라는 최후의 보루를 자신들이 가졌다는 것이다. 웃기는 일이다. 국회의장이 비록 여당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여당의 편을 노골적으로 들어서야 되겠는가? 엄정한 중립이 지켜져야 3부요인의 한사람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법이다. 또 설혹 국회의장이 편파적인 입장을 취한다 하더라도 모든 중요한 입법안을 직권상정하면 그것이 의회독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소관 상임위의 토론을 거쳐서 타협하고, 타협이 안되면 표결로 처리하는 것이 대의정치의 기본이다. 법사위를 막아선 한나라당이 과정에서 협조해줄 리가 만무한 일이었다. 결국 시작부터 개혁입법은 물건너간 일이 되고 말았다. 국회가 여전히 소수당인 한나라당의 지배하에 놓여진 이유는 법사위원장 자리를 장악하고 당리적 판단으로 쥐락펴락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든 사람들이 당시의 열린우리당 지도부인 것이다.
4대개혁입법은 물론이고, 열린우리당이 살아남기 위해서 필수적인 선거제도 개선과 지역구도의 완화에 대한 조치를 전혀 취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결국 지지자들은 돌아서기 시작하였고, 열린우리당의 주요인물들은 제살길을 찾기에 분주하였다. 다 죽어가던 민주당을 합당론으로 부활시켰다. 묵묵히 돈내고 시간쪼개서 당을 지원하던 당원들에게 화살을 돌리고 원망을 시작하였다.
마침내 당의 창당정신마저 부정하는 정치인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당권의 장악을 위해서 종이당원을 동원하는 구태가 드러나고, 그것도 모자라서 당헌당규를 무력화하는 경과규정을 도입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당을 스스로 모욕하고 망가뜨린 사람들이 더더욱 자신들의 미래에 불안을 느끼고 정부와의 차별화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돌리고 자신들은 책임을 벗어나려 하였다.
삼삼오오 모여서 당을 완전히 망가뜨릴 궁리에 바빴다. 드디어 일찌감치 경쟁정당으로 투항한 사람도 발생한다. 집단으로 자신들이 만든 당에 침을밷고 나가기 시작한다. 결국 소수당으로 전락을 시키고도 안심이 안되는지 잠재적 경쟁관계를 해소하기 위해서 당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그렇게 당당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기득권에 연연하며,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이 누구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되묻고 싶다.
여전히 대통합 민주신당은 여권인지 야권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심지어 정부여당과의 차별화에 몰두하는 대선주자들이 판을 치고 있는 집단이다. 이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무엇일 위해서 지금껏 스스로 옳은 명분을 내세워 만든 정당을 허물고 지금의 잡탕을 만든 것인가? 상향식 정치를 포기한 것이 뭐 그리 발전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말문이 막히고 기가 찰 노릇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망가뜨린 자들이 손학규씨의 한나라당 탈당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은 매우 우스운 일이다. 여전히 지지자들을 모아서 동원하고 있는 종이선거인단의 괴수들이 무엇이 그리 떳떳하단 말인가? 나는 손학규씨가 우리의 대표선수가 되는 것에 반대한다. 자좀심이 상하고 화가난다. 그런데 정작 판을 이렇게 만들고 국민의 외면을 자초한 자들이 왜 하필 손학규씨를 비판하는가? 심지어 손학규씨에 대하여 탈당해서 함께 하자고 권유하던 자들이 왜 그를 비판하는가?
나는 비판할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나는 부끄러울 일이 없다. 그런데 스스로 이러한 처지를 자초한 탐욕스럽고, 무능하며, 도리도 모르는 당신들은 비판할 자격이 없다. 50보를 도망간 것이나 100보를 도망간 것이나 비겁한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비판하기 전에 스스로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들여다보기를 권한다. 적어도 당신들은 비판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부끄러운줄 알아야 한다.
지역구도가 그렇게 달콤하였는가? 공천장사가 그리웠는가? 한나라당이 그렇게 무서웠는가? 책임정치가 그렇게 손해나는 일이었는가? 당신들의 잘못을 아직도 모르겠는가? 차라리 그런 협잡정치를 하려거든 집어치워라. 화가 치밀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