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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병제는 진보적인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의 이른바 진보진영은 틈만 나면 모병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일까.
누군가가 모병제의 본질에 대해 잘못된 개념을 생산해내고 있거나 아니면 남북의 군 사대치 자체에 의문을 던지게 하는 또 다른 고도의 복합적인 계산이 작용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도 모병제를 하고 있지 않나 라고 말한다. 미국이 모병제를 한다고 해서 우리도 모병제의 길로 가야 하는가.
모병제를 하면 어떤 사람들이 군에 가며, 국민 계병제의 군과 모병제의 군은 다 같은 군인가 아닌가. 이 문제와 관련해서 모병제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를 미국 뉴욕 타임즈지가 실은 적이 있다. 모병제 이후의 미국군은 육체 노동자 계급의 거울 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모병이라는 것은 국토방위의 국민의무에서가 아니라 직업으로 군을 선택해서 월급을 받는 군을 말한다. 베트남 전쟁이 미국의 오늘날과 같은 블루칼라의 직업군대를 만들 어낸 기폭제이다.
1973년 닉슨 행정부가 반전기운을 약화시키기 위해 징병제를 폐지한 결과이다. 당시 베트남전쟁은 인기가 없었고, 대학생에게는 군 입대가 유보되었기 결국 전쟁의 짐은 덜 배우고 더 가난한 자들의 어깨에 매워졌다. 군은 엘리트들에게 기피의 대상이 되었 으며, 명예에는 의무가 따른다는 노블레스오블리지의 건국 초기의 미덕들도 함께 사 라졌다.
그래서 나온 것이 지금의 모병제이다. 지금 미국군은 신병에서 장군에 이르기까지 모 두 직업군인이다. 그 결과 군에는 시민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정치 문화적 태도가 죽어버리고 대신 하나의 거대한 군사 이익집단이 들어서고 있다.
따라서 전쟁과 전쟁의 위기감 조성과 끊임없는 군비확대가 그들의 비즈니스처럼 되고 있다.
돈 받고 싸우는 모병제의 군과 분노와 광신으로 무장한 이슬람 ‘순교자’들이 지금 생사를 거는 사막전쟁을 이라크에서 벌이고 있는 것이다. 모병의 미국군은 왜 그들이 이라크 사막에서 죽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설명할 수 있다면 단지 가난한 집안의 자식이었다는 불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군 입 대 이외에 생애의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해 군에 들어온 자들이다. 그들에게 사막에의 죽음은 불공평한 인생 그 자체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모병제에 따라 군을 직업으로 선택하고 있는 오늘의 미국 젊은이들은 대부분 사회적으 로 주변부 출신이다. 군 병력의 60%가 백인인데 그들은 대부분 기혼이고, 대학에 진학 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없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또 흑인의 경우 인구에서는 미국 인구의 12.7%를 차지하나 군 병력에서는 22%를 차지 한다. 또 히스패닉계의 경우 군복을 입은 히스패닉의 수가 지난 10년 사이 30%가 증가 하고 있다.
군은 단순한 국방의 의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군복무를 통해 국가에 봉사하고 시민 으로서의 책임감을 키운다. 말하자면 군은 젊은이들이 썩는 곳이 아니라 또 하나의 국 민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는 국민 계병제에서의 군의 이야기이고, 모병제의 군은 이런 가치들과 출발 에서 관계가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 일상의 쾌락은 우리의 것, 국방의 고통은 돈 주고 산 용병들의 것이라는 부도덕의 방정식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가진 자 들의 군대가 모병제의 군대인데 갖지 못한 자들을 대변한다는 자칭 진보주의자들이 모 병제를 꺼내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더군다나 모병제에는 관료제가 자기 팽창의 원리에 지배당하듯이 군이 용병으로서의 특성과 더불어 보다 현대적인 정교한 무기. 보다 많은 물자와 인력을 요구면서 독자 적인 군사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보다 근본적인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는데 도 말이다.
최병권논설위원 bk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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