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말고’에 멍드는 대한민국
근거 없는 의혹제기, 대통령도 언론도 국정도 상처
김상철 국정홍보비서관실 행정관
정치신문 조선, 동아일보나 한나라당이 피해 당사자였다면 이런 식으로 보도하고 주장했을까. 사실도 무시하고 의혹만 부풀리는 무책임한 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대통령이나 친인척, 청와대만 연결시키면 사실도, 책임도 필요 없다는 것인가.
21일자 동아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조카인 노지원씨는 왜 바다이야기 관련업체에 들어갔을까”라며 풀리지 않은 의혹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노지원씨는 지코프라임 인수 이전까지 우전시스텍에 근무했고, 양사가 그 전까지 별개의 회사라는 점은 이미 다 공개된 사실이다.
새롭게 확인한 사실이 없음에도 한나라당은 시중의 설(說)을 모아 일찌감치 ‘권력형 게이트’라 규정했고, 중앙일보는 <한나라 “권력형 게이트”> <“정권 실세 개입 공공연한 비밀”> 기사 등으로 일부 주장을 그대로 받아쓴다. 여전히 ‘도박게이트’로 표기하는 조선일보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없는 사실, 없는 의혹 만들어내기
문제가 있다면 사실을 취재해서 쓰면 된다. 알려진 사실마저 무시하고 확인하지 않은 내용을 의혹으로 포장해 내보내면 언론의 책임을 다하는 건가.
몇몇 정치신문의 기사에는 “~했을 가능성이다” “~하고 있다는 의혹이다” “누군가가 있는 듯한 인상이다” “~관측도 나온다” 등 온갖 주관적인 추측과 해석이 난무한다. 의혹을 제기하려면, 적어도 일반인이 고소장을 쓸 때의 긴장감과 윤리의식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명색이 책임 있는 공당(公黨)과 언론의 자세가 그 보다도 한참 뒤떨어져서야 되겠는가.
18∼19일 언론에서 주요하게 다뤘던 대통령의 논설위원 오찬간담회 발언은 무책임 보도의 대표적인 사례다. 비공개로 진행된 오찬 기사를 언론은 “내가 뭘 잘못했는지 한번 꼽아보라” “내 임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 개혁은 끝났다” 등 대통령이 하지도 않은 말로 도배했다. 사실을 무시하고 전언(傳言)에 전언을 거듭해 기사를 만들어낸 결과다.
이런 사례가 한두건이 아니다. 언론은 이른바 대통령의 측근, 친인척과 관련한 설을 끊임없이 제기하며 온갖 의혹을 쏟아 부었다.
수수, 뇌물說 거론된 액수만 3500억 넘어
2002년 썬앤문 사건을 보자. 당시 썬앤문 그룹이 불법 대선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한나라당에서 제기하자 일부 정치신문은 <대선자금·減稅 ‘뒷거래’ 있었나> <썬앤문, 盧측근들에 집요한 로비 왜?> <썬앤문, 盧측근들에 건넨 돈 성공한 減稅로비 대가 의혹> 등으로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권력형 비리로 몰아갔다.
한 신문은 160건이 넘는 기사를 쓸 만큼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대선자금 제공설은 검찰수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른바 ‘민경찬 펀드’도 ‘유전 게이트’도 마찬가지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까지 제기된 각종 모금, 수수, 뇌물설로 거론된 ‘괴자금’의 액수만도 3500억원이 넘는다.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언론과 정치권이 무책임한 의혹 제기를 되풀이하는 동안 나라 전체가 불필요한 시비에 휘말리고 정부와 국정운영에 대한 신뢰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알맹이 없는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검찰수사와 해명 등으로 국가 역량을 소진하기도 했다. 국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신뢰를 상실케 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언론의 신뢰도가 달리 하락하는 게 아니다. 기자들 스스로의 평가도 냉엄하다. 한국기자협회가 전국기자 300명을 대상으로 이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45.0%가 신뢰하는 언론사가 없다고 답했다. 대통령 흔들기에 몰두하는 정치신문들의 신뢰도는 조선(4.0%), 중앙(3.7%), 동아(2.0%) 등으로 바닥을 쳤다.
실체 없는 의혹이 나라를 휩쓸고 나면 그것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도, 사과하는 사람도 없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일반인들이 무고(誣告)를 당했을 때 그로 인해 겪어야 하는 고통과 혼란은 얼마나 큰가. 근거 없는 의혹에 시달리는 대통령과 정부의 그것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가만있으면 의혹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그 때문에 산적한 현안을 뒤로한 채 대응하고 해명하는 작업이 불가피하다. 대통령이 국정을 챙겨야 할 시간과 역량이 그렇게 소모적으로 허비된다.
국정감시 아닌 국정방해
정치신문과 정치권이 근거 없는 시비에 매달리는 동안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은 쌓여만 간다. 7월 20일 현재 계류 중인 정부발의 법안만 국민연금, 국방개혁 등 188건에 이른다.
근거 없는 주장으로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정부의 손발을 묶으면 어떻게 책임 있는 국정운영이 가능하겠는가. 대통령 견제, 정부 감시가 아니라 대통령이 아무 일도 못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
‘아니면 말고’식 주장을 거듭하는 것은 또 다른 특권의식일 뿐이다. 대통령 견제, 정부 감시라는 간판을 내걸면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무책임한 주장을 해도 된다고 허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책임 있는 주장과 비판, 국정도 살리고 언론도 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