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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음노인
광화문 촛불을 마치고 귀가하는 버스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종로4가까지 걸어와서 운 좋게 혜화동, 성신여대를 경유해서 도봉산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미아사거리 역에서 내려 택시타고 집에 갈 요량이었다. 나같은 시민들이 많아서 운전기사 등뒤에서 간신히 손잡이 하나 붙들고 서 있을 수 있었다. 버스가 막 출발하면서부터 안쪽 두사람 앉는 좌석 쪽에서 남자 어르신의 고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젊은것들이 말이야.니들이 세상을 알아, 뭘 알아. 탄핵이 뭔지나 알고 떠드는거야. 빨갱이한테 나라 팔아먹는거야. 알고나 좀 하라구"
앞니 하나 빠지신 듯 약간의 풍음이 섞여 있었다. 분에 겨워 내지르는 목소리였지만 자신의 소신대로 시국을 말하고 있었다. 70대 중후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눈을 감고 무슨 이야기 하시나 집중해 보았다.
"아무데서나 껴안고, 뽀뽀하고, 만지고. 그런 추잡한 젊은 놈들이 촛불이니 뭐니 하는거라구. 니들이 아무리 해봐라. 내려오라구? 어림반푼어치도 없지"
노약자석의 할머니가 듣다못해 한마디 거든다.
"영감님, 영감님 손주라고 생각해 보세요"
"내 손주, 흥, 나한테는 이런 쌍판 싸가지 없는 손주는 없어"
혜화동로터리까지 오는 세 정거장 동안 나는 눈을 한번도 뜨지 않고 그 어르신의 목소리를 들었다.할머니가 한마디 거들고나자 다른 승객들에게서 "혼자 탄 버스냐", "창피하니 그만 하라", "늙어도 곱게 늙어야지" 여기저기 성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승객들과 70대 풍음노인이 옥신각신 하는데 갑자기 젊은 여자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떴다. 혜화동에서 승객이 많이 하차해서인지 서 있는 몇사람을 빼고는 다 앉아 있었다. 버스 안의 풍경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우리 아무것도 안 했단 말이예요, 엉엉"
이런 저 어르신은 지금 대학생 남녀 앞에서 훈계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남학생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어이없어 하며 노인을 바라볼 뿐이고, 여학생은 승객들이 한마디씩 거들자 울음보를 터트린것이다.
"저 영감탱이 저승사자는 안 잡아 가고 뭐하누. 쯧쯧"
처음 말 거들었던 할머니가 성신여대 정류장에서 한마디를 더 보태고 내리신다.
"할아버지 왜 이러세요. 저희가 뭘 잘못 했는데요?"
남학생이 도저히 못 참겠다 싶었는지 용기를 낸다. 여학생은 계속 어깨를 들썩이고 있다.
"어쭈, 이거봐라. 늙었다고 주먹으로 한방 치겠다는건데 어디 쳐봐, 쳐봐라"
노인이 상체를 남학생에게 들이댄다.
'이번 정류장은 길음뉴타운, 길음뉴타운 정류장입니다'
안내 기계음을 듣고 나는 성큼 큰걸음으로 노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버스가 멈추자 할아버지의 한쪽 팔을 붙잡았다. 마치 강력 범죄자를 검거하는 형사처럼 노인의 팔을 붙들었다.
"따라오세요"
이렇게 딱 한마디만 하고 노인이 어떤 대항을 할 겨를을 주지 않고 버스에서 내려버렸다. 내린 버스는 체한거 시원하게 쓸어내렸다는 듯이 부릉 떠나는데, 두 학생과 승객들이 걱정하는 눈빛으로 창밖 나를 내다보고 있었다. 얼떨 엉겁결에 따라 내린 노인, 아까와는 다르게 말을 못하고 계시다.
"댁이 어디신지 모르겠는데, 여기서부터는 아까 학생들한테 사죄하는 마음으로 걸어 가세요. 저도 걸어 갈게요"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 집에 돌아왔다.
"뭐야 이 새끼, 이 빨갱이 새끼, 수유리까지 걸어 가라구? 너 이 호로 새끼"
내 뒤통수에 대고 무지막지하게 자신의 인생을 박살내시던 어느 풍음 노인 이야기였고, 이번이 마지막이 되길 소망한 열아홉번째 촛불 다녀오던 길이었다.
2017.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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